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전 시상을 떠올리려고
볼펜 끝을 주목해보던 소년시절 (저에게도 청소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 , 제게 T.S Eliot 과 그의 “황무지”라는 시는 마력을 지녔었습니다. 다들 봄에게 문을 열어주는 4월을 찬미하던 것과 달리,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의 힌트도 없고, 다 무너진 상태인데 다시 봄이 와서 메말라 죽어버린 듯한 삶을
다시 살아내라고 흔들어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세계대전 후 황무지같은
사회를 풍자했고, 비젼이 보이지 않지만 억지로 다시 일어나야하는 비참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저는 이해했었습니다. 소년 시절 상당히 염세적이었던 저에게 그런 시인의 호소는
힘이 있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요즘 말로 떼창을 했습니다.
2020년 4월은 엘리엇의 시를 다시 기억나게 합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갑작스런 이별과 상실의 소식들이, 그 어둠이 세상을 온통 휘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4월은 다른 별명도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 4월은 제게 희망의 달이 되었습니다. 잔인한 달에서 비젼의 달이 된 건 예수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주님의 생명의 빛을 가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상실감이 커도 장래 소망의 크기와 영광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 전 어떤 일들이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두었어도 4월 부활절기에 들어서면 주님 십자가와 부활 소망 앞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곧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가능할 거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성도님, 혹시 우환 폐렴의 기세와 영항으로 우울하거나 상실감에 힘드십니까? 주변을 보기 보다 성도님 안에 계신 부활하신 주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주님 음성을 들으십시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홤께 있을 것이다”
(요. 28:20).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