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설날 연휴 기간입니다. 어릴 적 설날에 부모님과 가족 어른분들께 세배를 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집에 가면 정성스레 만드신 다과를 내어주셨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학용품”이라고 쓴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 속에는 돈이 있었고, 제가 받아든 봉투는 어느새 어머니 손에 잡혀 있었습니다. “필요한 거 사야지…” 라는 어머니 말씀에
시큰둥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그런걸
아시는 분들은 “몰래 줄테니까 잘 써라” 하시고 세배드린 다음 나중에 은밀히 봉투를 건네준 분들도
기억이 납니다. 마치 은밀한 거래라도
하듯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
그 모든 설날의 기억은 사랑과 의지함 그리고 따스함이었습니다. 가족과
고향은 그래서 항상 기억에 소중한가봅니다. 제 부친께서 소천하신지 근 30년이 됩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 “네 가족들이다”라고 하시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친지들을 기억하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부친과 저의 대화는 언제나 매정할 정도로 짧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만큼 한 마디를 아껴
자식에게 잘 말하고 싶어하신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설날에 부친이 생각나네요
아버지의 등을 밀며 라는 제목으로 쓴 손택수 시인의 글입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덞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에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던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 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
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스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니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가족된 우리가 아버지 마음을 담고 서로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설날
축하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