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먼저 신앙생활이 느슨해졌어도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위험함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경계하라고 하셨던 일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경우였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결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드물고,
그 대신 세상 사람들이 만드는 “우상이나 왕”에 관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잠시 눈에 안 보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새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신이 바로 그 금송아지라고 외치며 춤췄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희박해지면 공백에 세상의 금송아지가 들어섭니다.
신앙생활에
활력이 떨어졌음을 깨닫고 경계심이 생겼다면 그 다음 회복의 단계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상태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내 신앙을 유지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돌보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 말씀은 영적인 삶에 기본 원리입니다. 우리가 나름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를 보면 흔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수고의 단계에 미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비신자를 위한 수고입니다. 비신자들을 보면 어떤 때는 그들이 조금도 세상 사는데 부족한
것 없이 지내니까 복음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살고 행복하다고 해도 예수모르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없는 인생 최종
도착지는 지옥입니다. 당장은 문제없어
보이는 그들도 장래 어떤 순간 예수를 절실히 원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계속 비신자들을 마음에 두고 그들에게 생명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과 결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소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은
어느새 신앙생활에 활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확신과 기쁨도 분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