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3-19 13:23
박성도/박순옥 선교사님: 20년 선교에 동력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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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경환
조회 : 1,039  
낮에 교회 주변의 무성한 풀들을 잘랐더니 밤이 되자 풀벌레 소리의 요란한 합주가 한국의 가을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12월이면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소리를 작년엔 듣지 못 했음을 떠올립니다. 주변에 그나마 남아있던 숲 지대에 주택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오염되어 살 곳을 잃어버린 벌레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나봅니다. 한밤중에 들리던 닭 울음도, 새벽마다 자지러질 듯 지저귀던 새소리도 한층 멀어졌습니다. 이렇듯 세월은 우리 주변의 것들을 하나씩 거둬가다가 언젠간 우리의 육체까지도 거둬가는 시간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살아온 날보다 짧을 여생일진대 나날이 깊이 있는 신앙의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선교는 한 곳에서 5년 내지 10년 하면 현지인에게 물려주고 떠나야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이 제기되지만, 20년이란 세월을 한 선교지에서 있어보니 사역의 진행과정과 결실을 바라볼 수 있어 좋습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스페니쉬를 사용하는 이 낯선 땅에 와서 언어소통이 전혀 안 되었던 우리가 처음 할 수 있었던 건 대로에 나가 행인들에게 전도지를 건네주는 일밖에 달리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벙어리 아닌 벙어리로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설프게 입이 열리니 사는 집 거실에서 이모저모로 알게 된 현지인 열댓 명을 모아 놓고 간신히 설교를 하는 폼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모양을 갖춘 사역을 하고 싶은데 자비량으로 시작한 무명의 선교사라 건축헌금을 모금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곳저곳의 쁘레까리오(관리가 소홀한 정부 땅이거나, 소유자가 불분명한 땅을 빈민들이 불법점유 하는 것)지역을 무작정 찾아가 땡볕아래서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로 돌아다니며 주워 나른 나뭇가지로 불을 때어 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정성에 감동한 리더가 땅을 분배해 주어서 함석으로 임시 예배처소를 지었습니다. 물이 없어서 이웃에서 양동이로 물을 들어 나르고 건축비를 절약하려 땡볕 아래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못질을 했습니다. 열대의 강한 햇살에 덴 피부는 수시로 허연 껍질이 때처럼 벗겨지고 밤잠을 설치도록 속살이 아렸습니다. 그래도 이제 공적인 예배장소가 생겼다는 기쁨에 어떤 고생이라도 감내 했었습니다.

집회를 하면 발 디딜 틈 없이 무리들이 운집했지만 그들이 갈망한 대상은 복음이 아니라 물질이었음에 사역은 이내 벽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을 일개 자비량 선교사가 해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맨땅에다 검은 비닐로 움막을 치고 그날 먹을 것을 찾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그들에게,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라’는 강하고 확실한 메시지로 그들의 건조한 심장에 은혜를 끼치기엔 언어의 장벽이 높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향한 저희의 역할은 단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 \'JESUS\'란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희나 그들이나 생존의 뿌리를 내릴 확고한 자리가 없어 부평초처럼 떠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얻으려 몰려다니고 저희는 사역을 찾아다니던......

선교 10년에도 함석교회를 전전하는 저희를 두고 ‘나는 함석교회 같은 것은 안 짓는다.’고 했다는 후배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비록 함석교회일지라도 복음을 전할 장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당당했던 저희와는 달리, 함석교회 운운하며 상대를 비하하고 후원 많이 받는 것을 과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만을 질책하시듯 그는 얼마 못 가 IMF 사태로 말미암아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고, 함석교회에도 감사가 넘쳤던 저희에게는 2층짜리 튼튼한 교회건물과 사택까지 짓게 하셨습니다. 합법적인 교회가 건축되자 온 가족이 더 열정적으로 목회에 전력했습니다. 주사역인 치리뽀 까베까르 인디오 부족 선교를 병행하느라 주일을 비울 때를 대비하여 부교역자를 두었다가 교회가 분리되기도 하고, 갑자기 선교비가 끊겨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이웃 천주교인들의 핍박에 끊임없이 시달려도 꿋꿋이 지탱해 온 것은, 생각만 해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이거니와 허물 수 없는 견고한 건물의 존재도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입니다.

또 10년이 흘렀습니다. 임시 예배당을 전전하던 쁘레까리오 지역의 사역이 오로지 파종하는 의미였다면 요즘은 가꾸고 결실하는 사역이 아닌가 합니다. 10년 전 처음 교회에 나올 때만해도 열 살 남짓하던 아이들이 세례를 받고 신앙적으로 잘 자라서 이제 제 또래들을 전도하고 청년회를 구성하여 자발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세상 유혹에 약하여 자칫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연령인 10대 중후반의 불신자들이 많이 전도된 것입니다.

영세민들, 일용노동자들의 주거 지역인 교회주변은 마약판매상,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들이 수두룩한데다 살인자로 징역살이 중인 사람이 세 명이나 됩니다. 이렇듯 가난하고 문제 많은 환경에서 자라는 10대들은,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공부는 하기 싫고 일 하기엔 미성년자라서 불가하니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며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10대 중반에 마약과 술, 담배 등에 손을 대고 도둑질, 강도짓을 하는가 하면 더러는 나쁜 어른들의 성폭행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부류의 아이들 30여명이 4개월째 착실히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비록 외모로는 귀도 뚫고 코도 뚫어 불량기가 가득한 아이들이지만 찬양을 가르치니 착실해 보이는 아이들보다도 더 진지하게 잘 따라 합니다. 어서 세례를 받아 달란트대로 봉사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머리 숙여 기도하는 모습에서 뭔가 갈급해 하는 심정이 엿보였습니다. 악의 늪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발버둥이 느껴졌습니다. 제 힘으론 아니 되는 줄 알아 전능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믿음이 전해졌습니다. 빛을 갈망하는 자들을 빛 되신 주님 앞으로 온전히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 선교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생각합니다. 기사와 이적을 보고 뒤따르던 무수한 군중이 있었지만 결국엔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이 복음전파에 생명을 드렸듯이, 우리 사역도 허상을 바라보고 몰려들던 군중의 시대를 지나 이제 말씀으로 양육되는 제자의 시대에 돌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해발 3,820m의 산속을 20년간 드나들며 정성을 쏟은 치리뽀 인디오 교회들과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목회하는 산호세 창세교회는 때가 되니 많은 가시적인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현지인들에게 맡겨진 교회들은 자주 휘청거리는 원인이 목회자의 영혼을 향한 열정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람직한 선교는 씨만 뿌리고 할 일을 다 한양 훌쩍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신 예수님의 사랑을 선교사의 심장을 통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후방에서 기도로 물질로 협력하시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지에는 선교사가 할 일이 많습니다. 아무런 자격제한도 없이 자신이 원하면 목사가 되는 이곳의 풍토에 따라 신학도 안 하고 더러는 글도 못 쓰는 사람이 목회를 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체계적인 신학교육을 시키는 것이 선교사들의 할 일입니다. 또한 전체 목회자들의 문란한 사생활에 경종을 울릴 사람도 선교사뿐입니다. 현지 목회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소외당한 오지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우리 선교사의 할 일입니다. 올해도 여러분의 뜨거운 기도와 물질의 후원으로 니카라과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주안에서 큰 복 받으시고, 번창하시고,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2010년 3월 2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선교사/ 박성도, 박순옥, 박태현 드립니다.

(기도제목)
1. 치리뽀 인디오 사역과 코스타리카의 12개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2. 3월 치리뽀 방문 단기선교팀이 은혜가운데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가도록
3. 3월 중순에 개학하는 니카라과 신학교 교수, 학생의 건강과 학업을 위하여
4. 4월에 있을 니카라과 목회자 세미나 강사 목사님과 참석자들을 위해
5. 중, 고등학생 및 신학생 장학사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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