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1-18 10:46
순교(殉敎)란 말의 진정한 뜻 (클로디아 로제트 논설위원. 포브스 매거진/2010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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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북한방송에 실린 것입니다. 이 글을 쓴, 클로디아 로제트 여사는 민주주의 수호재단의 상임 논설위원으로서 포브스 매거진에 매주 기고하고 있습니다.
The True Meaning of Martyrdom
당신은 어떤 대의(大義)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그냥 관념적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와 이상을 두고 싸우는 거대한 투쟁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다음 주 월요일(1월 18일), 자신의 생명을 자유를 위한 투쟁에 걸었고, 산(山)의 높은 정상을 넘겨다보고는 자신의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할 것이다.
지난 성탄절, 우리는 두 젊은이의 얘기를 들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으나, 두 사람은 그 방법과 비전에서 서로가 너무 달라서, 이 두 젊은이의 얘기는 우리 시대의 투쟁을 정의(定義)하는 교훈이 될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젊은이는 이제는 세상이 다 알게 된 속옷내복 자폭특공대원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라는,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 부자 모슬렘 신도이다.
그는 이슬람 극렬파에 빠지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289명의 승객을 태우고 디트로이트로 가는 아메리칸 항공사 여객기를 폭파시켜 테러와 죽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다 한다. 그가 미국 영공에 들어와서 여객기 폭파 자살을 기도했는데도, 오마바 정권은 그에게 미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주어서 이 젊은이가 무죄를 주장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두 번째 순교자는 완전히 다른 경우로서, 28세 된 기독교 선교사 로버트 박이다.
한국계 미국시민인 로버트 박은 성탄절,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하여 자신을 평화적으로 희생하였다. 그는 중국 동북부로 들어가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북한으로 들어갔다. 현지 목격자 증인들이 외신기자들에게 한 증언에 따르면 로버트는 북한으로 들어가면서 한국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며 “나는 미국시민입니다”라고 선언했다 한다. 그는 북한의 폭군 김정일에게 나라를 개방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몸에 지니고 들고 갔다.
로버트 박이 북한이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거의 3주가 되어 온다. 로버트가 예상했던 대로 그는 북한 경비대에 체포되었다. 북한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로버트의 이 엄청난 행동에 대하여 의견이 갈렸다. 로버트 박은 용감한 사람인가, 아니면 바보이거나 미친 사람인가? 흡혈귀 같은 김정일의 마수 안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행동에 무슨 당위성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로버트 박은 자신의 목적과 바람(希望)을 분명히 밝히고 들어갔다. 그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기 전, 자신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발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로이터 통신과 회견을 가졌다.
로이터 통신은 로버트가 입북한 직후 그와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했다: 로버트는 정확히 말하기를 “나는 북한에서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내 몸값을 지불하여 나를 구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가 남긴 것은 “북한주민들이 해방되는 것,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들이 해체될 때까지는 북한에서 나오지 않겠다. 내가 그곳에서 북한주민들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난 그곳에서 죽기를 원한다”라는 메시지였다.
이것은 미친 사람의 헛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악(惡)과 싸우는 선(善)에서 나온 열정의 포효(咆哮)다. 로버트는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 악독한 폭정이 계속되는 나라다. 스탈린의 굴라그에 맞먹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인적 노예노동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로버트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북한정권은 “인종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라고 비난했는데, 로버트 박의 말이 맞다.
휴전선 남쪽에서 남한은 지금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전했는데,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 1백만 명, 그 이상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김정일과 김정일을 둘러싼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권력과 향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고 국제적 밀수를 자행하면서 국민들을 굶겨 죽이는 정책이 만들어낸 기획적 인조 재해였다.
국제 공공단체에서는 이러한 참극을 끝내기 위하여 심각한 결의로 진정한 노력을 언제 했던 적이 있는가? 미국 군인들은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을 각오가 되어있으나, 한국전쟁이 1953년 정전상태로 들어간 후, 미국과 연합국들은 한반도에서 북한이라는 전체정권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 어떤 국제기구도 북한정권에게 강제수용소들을 해체하여 주민들을 해방시키라고 요구할 의지나 용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도 철조망으로 보호가 잘 된 북경 사무실에 편안하게 앉아서, 중국정부의 요구에 따라, 절망적으로 중국공안에 쫓기는 탈북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사도 김씨 조선 왕국에서 한 몫 하겠다고 김정일에게 굽신거리고 있다. 국제적십자사 대표들이 김정일의 강제수용소를 방문했는지 몰라도, 아직 거기에 대한 보고서를 낸 적은 없다.
“미국시민”인 로버트 박은 2천3백만 북한주민들의 자유와 생존권을 외치면서 이 암흑세계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미국의 영혼 자체를 열정으로 부르짖은 의거(義擧)다.
그러나 그 운명적 성탄절 이후, 우리는 로버트 박의 자기희생적 의거보다 자폭기도 테러리스트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에 관한 소식을 더 많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압둘무탈라브가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후, 그에게는 의사들, 변호사들, 미국법정이라는 공연무대가 급히 완비되어, 압둘무탈라브에게는 벌써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할 기회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그와 정반대로, 정의나 법은 어디에도 없고 죄수들을 고문과 기아로 다루는 악명 높은 북한체제라는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美당국은 로버트에 관하여 (어디엔가) 질의를 했으나, 그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발표했다.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이 두 젊은이 중, 미국은 누구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죽음을 찬양하는 이슬람 광신도들, 테러로 폭정을 유지하는 세력들에게만 끝없는 관심으로 일관할 것인가?
전술적 면에서 이 사건을 토론할 수도 있다. 필자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로버트 박처럼 김정일의 감옥으로 걸어 들어갈 것을 종용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로버트는 기획적 자기희생으로 온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고 북한에 들어간 것이다.
이 메시지는 미국민 모두가 칭송하고 기억해야 하는 메시지다. 악에게 굴종하는 자는 자유인이 아니다. 악을 악이라고 부르고, 악에 맞서는 것, 악의 세력에 끌려가지 않고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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